2026-09-23

<토지>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 박경리 탄생 100주년 교보아트스페이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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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
  • 8명의 회화 작가가 재해석한 <토지> 속 장면들
  • 박경리가 전하고자 했던 ‘생명의 존엄성’, 그림 통해 다시금 느껴보세요!

2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토지>를 30개의 그림으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교보아트스페이스에 조금 특별한 <토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소설 속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재해석해, 문장으로 만났던 <토지>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됐는데요.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부터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이야기까지,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토지>를 함께 만나볼까요?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토지>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박경리 작가가 약 26년에 걸쳐 완성한 <토지>는 1897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입니다.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하동과 진주 등을 거쳐 간도와 만주, 연해주까지 뻗어 나갑니다. 동학의 여진과 일제강점기, 만주 이주, 독립운동과 해방 등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도 작품 곳곳에 등장하죠.

하지만 <토지>가 바라보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만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 박경리 작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래서 <토지>는 한 시대의 기록인 동시에, 인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했던 작가의 문학에는 고통받는 존재를 향한 시선과, 그럼에도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애정이 깊게 스며 있습니다.

문장에서 그림으로, 다시 만나는 <토지>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그렇다면 20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야기는 전시장 안에서 어떻게 펼쳐질까요?

이번 전시에는 길현, 김선두, 박문종, 박세진, 박영근, 안중경, 이동환, 홍승희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8명의 작가는 <토지> 속 30개의 장면을 각자의 시선과 화법으로 새롭게 그려냈는데요.

200자 원고지 3만여 장에 이르는 이야기를 30개의 장면으로 압축한 만큼, 전시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 1부부터 5부까지 차례로 이어집니다. 박경리 작가의 책장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조형물을 지나면, 관람객 앞에 소설 속 장면들이 하나둘 펼쳐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은 소설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단순한 삽화가 아닙니다. 8명의 작가는 각자가 바라본 <토지>를 구체와 추상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문학의 언어가 화가의 상상력을 만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1부,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평사리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김선두 밤길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첫 번째 장면 서(序)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토지>의 시작을 그린 장면입니다. 1897년 한가위, 평사리의 풍요로운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송편을 문 아이들과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타작마당을 오가는 사람들, 마을 곳곳에 울려 퍼지는 꽹과리와 징 소리까지. 한 해의 결실을 맞이한 평사리는 사람들의 웃음과 흥겨움으로 가득합니다.

이 평화로운 평사리는 <토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간이자,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가고 지켜내고자 했던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이후 시대의 거센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겪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생명력이 가득했던 이곳, 평사리에서 출발합니다.

2부, 살아간다는 것의 아이러니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박영근 생명의 부활

2부에서는 작고 연약한 새 한 마리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토지> 2부 1편 12장 ‘작은 새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입니다.

“새 새끼를 줏어왔다면서?”
“네. 그냥 두면 굶어 죽을 성싶어서요.”
장난을 하다 들킨 소년같이 길상은 성이 난 얼굴이었다.
“큰일거리 생겼구먼.”

열세 번째 장면, 작은 새의 죽음

길상은 나뭇가지에 홀로 남겨진 꾀꼬리 새끼를 살리기 위해 여치를 잡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죠.

이 장면은 ‘생명은 소중하다’는 단순한 메시지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에 기대야 하는 현실과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까지 함께 담아냅니다. 박경리 작가가 바라본 생명이 결코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부, 거대한 역사 속 한 사람의 마음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박영근 마주보다

“언제나 그랬었지만 사막을 걷듯 서희는 언덕길을 내려온다. 일체를 차단하고 만 높은 담벽, 붉은 벽돌의 담벽과 서대문 종점의 우중충한 풍경은 인생의 종말같이 서희 마음을 눌러 지른다. 이곳의 풍경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늘 잿빛이었다. 형무소 문을 드나드는 죄인과 죄인들 가족의 마음과 같이 황량한 바람의 잿빛이다.”

열아홉 번째 장면, 마약의 심연

3부에서는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서희를 만나게 됩니다. 독립운동으로 수감된 길상을 만나기 위해 형무소를 찾은 서희는 높은 담벽 앞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요.

박영근 작가는 이 장면을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순간에 초점을 맞춰 그림으로 풀어냈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거대한 역사의 이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기다리고, 걱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인 것이죠.

<토지>가 시대의 격변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4부, 근대 도시의 빛과 식민지의 그림자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홍승희 음률의 만남

“제가 송관수의 아들 영광이올시다.”
홍이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약간 다리를 절었고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관골에 흉터가 있었다. 연예인답게 야한 구석이라곤 없었고 검정 양복에 기름기 없는 머리는 더부룩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세련돼 있었고 분위기는 우울하며 무거워서 홍이는 연소자로 대할 수가 없었다.

스물세 번째 장면, 서비스 공장

4부에 들어서면 <토지>의 풍경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집니다. 무대는 중국 장춘, 당시 신경이라 불리던 도시로 옮겨갑니다. 자동차 공장과 색소폰 연주자 등 앞선 장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근대적 풍경이 등장하죠.

하지만 화려하게 변해가는 도시와 달리, 그곳을 살아가는 영광의 모습에는 묵직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홍승희 작가는 기술과 도시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 뒤편에 여전히 존재했던 식민지의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5부, 마침내, 빛 속으로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김선두 서희

마침내 <토지>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빛 속으로’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장면에는 해방의 소식을 듣는 서희와 양현, 그리고 섬진강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서른 번째 장면, 빛 속으로!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토지>의 중심에 있는 인물, 서희를 담아냈습니다. 전시의 시작부터 천천히 장면들을 따라온 관람객은 수많은 사건과 상실을 지나 끝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서희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토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같습니다. 박경리 작가가 바라본 생명은 고통이 없는 존재가 아닌, 고통을 안고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교보아트스페이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토지 하늘의 빛 땅의 빛

그림으로 만나본 박경리 작가의 <토지>, 어떠셨나요? 같은 이야기도 작가의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토지>를 통해 박경리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생명의 존엄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는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 27일(화)까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익숙했던 <토지>의 장면을 그림으로 새롭게 만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천천히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

<토지>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 박경리 탄생 100주년 교보아트스페이스 전시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8명의 회화 작가가 재해석한 <토지> 속 장면들박경리가 전하고자 했던 ‘생명의 존엄성’, 그림 통해 다시금 느껴보세요! 2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토지>를 30개의 그림으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교보아트스페이스에 조금 특별한 <토지>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소설 속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재해석해, 문장으로 만났던 <토지>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됐는데요.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부터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이야기까지,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토지>를 함께 만나볼까요?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토지> 박경리 작가가 약 26년에 걸쳐 완성한 <토지>는 1897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입니다.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하동과 진주 등을 거쳐 간도와 만주, 연해주까지 뻗어 나갑니다. 동학의 여진과 일제강점기, 만주 이주, 독립운동과 해방 등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도 작품 곳곳에 등장하죠. 하지만 <토지>가 바라보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만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 박경리 작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래서 <토지>는 한 시대의 기록인 동시에, 인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했던 작가의 문학에는 고통받는 존재를 향한 시선과, 그럼에도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애정이 깊게 스며 있습니다. 문장에서 그림으로, 다시 만나는 <토지> 그렇다면 20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야기는 전시장 안에서 어떻게 펼쳐질까요? 이번 전시에는 길현, 김선두, 박문종, 박세진, 박영근, 안중경, 이동환, 홍승희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8명의 작가는 <토지> 속 30개의 장면을 각자의 시선과 화법으로 새롭게 그려냈는데요. 200자 원고지 3만여 장에 이르는 이야기를 30개의 장면으로 압축한 만큼, 전시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 1부부터 5부까지 차례로 이어집니다. 박경리 작가의 책장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조형물을 지나면, 관람객 앞에 소설 속 장면들이 하나둘 펼쳐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은 소설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단순한 삽화가 아닙니다. 8명의 작가는 각자가 바라본 <토지>를 구체와 추상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문학의 언어가 화가의 상상력을 만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1부,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평사리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첫 번째 장면 서(序)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토지>의 시작을 그린 장면입니다. 1897년 한가위, 평사리의 풍요로운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송편을 문 아이들과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타작마당을 오가는 사람들, 마을 곳곳에 울려 퍼지는 꽹과리와 징 소리까지. 한 해의 결실을 맞이한 평사리는 사람들의 웃음과 흥겨움으로 가득합니다. 이 평화로운 평사리는 <토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간이자,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가고 지켜내고자 했던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이후 시대의 거센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겪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생명력이 가득했던 이곳, 평사리에서 출발합니다. 2부, 살아간다는 것의 아이러니 2부에서는 작고 연약한 새 한 마리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토지> 2부 1편 12장 ‘작은 새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입니다. “새 새끼를 줏어왔다면서?”“네. 그냥 두면 굶어 죽을 성싶어서요.”장난을 하다 들킨 소년같이 길상은 성이 난 얼굴이었다.“큰일거리 생겼구먼.”열세 번째 장면, 작은 새의 죽음 길상은 나뭇가지에 홀로 남겨진 꾀꼬리 새끼를 살리기 위해 여치를 잡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죠. 이 장면은 ‘생명은 소중하다’는 단순한 메시지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에 기대야 하는 현실과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까지 함께 담아냅니다. 박경리 작가가 바라본 생명이 결코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3부, 거대한 역사 속 한 사람의 마음 “언제나 그랬었지만 사막을 걷듯 서희는 언덕길을 내려온다. 일체를 차단하고 만 높은 담벽, 붉은 벽돌의 담벽과 서대문 종점의 우중충한 풍경은 인생의 종말같이 서희 마음을 눌러 지른다. 이곳의 풍경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늘 잿빛이었다. 형무소 문을 드나드는 죄인과 죄인들 가족의 마음과 같이 황량한 바람의 잿빛이다.”열아홉 번째 장면, 마약의 심연 3부에서는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서희를 만나게 됩니다. 독립운동으로 수감된 길상을 만나기 위해 형무소를 찾은 서희는 높은 담벽 앞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요. 박영근 작가는 이 장면을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순간에 초점을 맞춰 그림으로 풀어냈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거대한 역사의 이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기다리고, 걱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인 것이죠. <토지>가 시대의 격변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4부, 근대 도시의 빛과 식민지의 그림자 “제가 송관수의 아들 영광이올시다.” 홍이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약간 다리를 절었고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관골에 흉터가 있었다. 연예인답게 야한 구석이라곤 없었고 검정 양복에 기름기 없는 머리는 더부룩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세련돼 있었고 분위기는 우울하며 무거워서 홍이는 연소자로 대할 수가 없었다.스물세 번째 장면, 서비스 공장 4부에 들어서면 <토지>의 풍경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집니다. 무대는 중국 장춘, 당시 신경이라 불리던 도시로 옮겨갑니다. 자동차 공장과 색소폰 연주자 등 앞선 장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근대적 풍경이 등장하죠. 하지만 화려하게 변해가는 도시와 달리, 그곳을 살아가는 영광의 모습에는 묵직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홍승희 작가는 기술과 도시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 뒤편에 여전히 존재했던 식민지의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5부, 마침내, 빛 속으로 마침내 <토지>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빛 속으로’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장면에는 해방의 소식을 듣는 서희와 양현, 그리고 섬진강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정말이냐….”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서른 번째 장면, 빛 속으로!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토지>의 중심에 있는 인물, 서희를 담아냈습니다. 전시의 시작부터 천천히 장면들을 따라온 관람객은 수많은 사건과 상실을 지나 끝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서희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토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같습니다. 박경리 작가가 바라본 생명은 고통이 없는 존재가 아닌, 고통을 안고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그림으로 만나본 박경리 작가의 <토지>, 어떠셨나요? 같은 이야기도 작가의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토지>를 통해 박경리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생명의 존엄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하늘의 빛, 땅의 빛 – 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시는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 27일(화)까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익숙했던 <토지>의 장면을 그림으로 새롭게 만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천천히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