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31

[김성일의 ‘마법의 연금 포트폴리오’] 3편. 그릇에 담을 재료, ETF를 고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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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정현 씨의 그릇

앞선 두 글에서 45세 직장인 김정현 씨는 자신의 연금을 진단하고, 노후 자금을 담을 그릇을 준비했다. 방치돼 있던 2층 퇴직연금(DC형)을 원리금 보장형에서 깨워 냈고, 비어 있던 3층에는 연금저축 계좌를 새로 열었다. 세액공제 한도인 연 900만원은 목표로 두되,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형편에 맞는 금액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계좌를 열고 돈을 넣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전 글에서 미뤄 둔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계좌는 어디까지나 그릇이고, 실제로 물가를 이기고 자산을 불리는 일은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 한다. 원리금 보장형에 방치된 퇴직연금이 제자리걸음을 했던 이유도, 그릇은 멀쩡한데 담긴 내용물이 예금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부터는 그 내용물을 다룬다. 오늘의 주제는 재료를 고르는 법, 곧 ETF다.

ETF란 무엇인가

ETF는 ‘상장지수펀드’의 줄임말이다. 이름은 낯설어도 구조는 단순하다. 펀드의 장점과 주식의 장점을 한 몸에 합쳐 놓은 상품이라고 보면 된다.

필진 김성일 3편

펀드처럼, 한 주만 사도 그 안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종목이 담긴다. 몇만원으로도 분산투자가 되는 셈이다. 동시에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다. 일반 펀드가 사고파는 데 며칠씩 걸리는 것과 다르다. 게다가 운용 보수가 훨씬 싸고, 무엇을 담고 있는지 매일 공개돼 투명하다. 일반 펀드는 보유 종목이 석 달에 한 번 공개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ETF가 담고 있는 주식에서 배당이, 채권에서 이자가 나오면 이를 모아 투자자에게 ‘분배금’이라는 이름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통로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이 분배금은 뒤에서 다룰 은퇴 후 현금흐름과도 이어진다.

정리하면 ETF는 소액으로, 분산해서, 싸게,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투자할 수 있는 도구다. 큰돈이 없고 관리에 시간을 많이 쓰기 어려운 직장인에게 잘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수를 사는 일

ETF를 이해하는 핵심은 ‘지수를 산다’는 개념이다. 펀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펀드매니저가 좋은 종목을 직접 골라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노리는 액티브 펀드이고, 다른 하나는 코스피200이나 S&P500 같은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인덱스(패시브) 펀드다.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액티브가 더 좋아 보이지만, 오랜 기간 여러 나라의 자료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시장을 꾸준히 이기는 펀드매니저는 매우 드물고, 그런 펀드를 미리 골라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액티브 펀드는 보수가 비싸다. 사람과 조사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일반 펀드의 보수가 연 1~2%를 넘나드는 데 비해, 지수만 따라가면 되는 ETF는 대개 0.5% 이하이고 낮은 것은 0.1%도 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해가 갈수록 복리로 벌어진다. 그래서 개인 투자자에게는 시장 전체를 싸게 소유하는 인덱스, 그중에서도 ETF가 합리적인 출발점이 된다.

시장 전체를 통째로 담는 인덱스 방식은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뒤, 낮은 비용을 무기로 반세기에 걸쳐 투자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ETF는 그 인덱스를 주식처럼 편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다듬은 형태다. 어렵게 종목을 고르지 않고도 시장의 평균 성과를 낮은 비용으로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바쁜 직장인에게는 오히려 든든한 무기가 된다.

이름만 읽어도 절반은 안다

ETF는 종목 이름에 규칙이 있다. 중요한 정보를 이름에 담아 두기 때문에, 이름을 읽을 줄 알면 그 상품의 성격이 대략 잡힌다.

필진 김성일 3편

예를 들어 ‘KODEX 미국S&P500’이라는 이름을 뜯어보자. 맨 앞의 ‘KODEX’는 이 상품을 만든 자산운용사의 브랜드다. KODEX는 삼성자산운용, TIGER는 미래에셋자산운용, RISE는 KB자산운용, ACE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붙이는 이름표다. 가운데(‘미국S&P500’)는 무엇을 담았는지, 곧 어떤 지수나 자산을 추종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름 끝에 ‘(H)’가 붙어 있으면 환율 변동을 제거한 환헤지형이고, 아무 표시가 없으면 환율에 그대로 노출되는 환노출형이다. 이름 몇 글자만 제대로 읽어도, 누가 만든, 무엇을 담은, 환노출은 어떤 상품인지 절반은 파악되는 셈이다.

무엇을 보고 고르나, 다섯 가지

같은 미국 주식 지수를 담은 ETF만 해도 여러 운용사에서 여럿이 나온다. 참치 통조림에도 여러 브랜드가 있는 것과 같다. 그중 하나를 고를 때 살펴볼 것은 크게 다섯 가지다.

  1. 기초 지수
    ETF가 무엇을 따라가는지가 가장 먼저다. 같은 ‘미국 주식’이라도 대형주 500개를 담은 지수인지, 기술주 중심의 100개를 담은 지수인지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다르다. 상품 이름과 설명에서 어떤 지수를 추종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2. 비용(총보수)
    ETF를 들고 있는 동안 매년 빠져나가는 총보수는 낮을수록 좋다. 같은 지수를 담은 상품이라면 굳이 비싼 쪽을 고를 이유가 없다. 국내 ETF의 총보수는 대체로 0.3% 안팎으로 일반 펀드의 몇 분의 1 수준이지만, 상품마다 편차가 있으니 비교해 볼 값어치가 있다. 작아 보이는 보수 차이도 수십 년을 곱하면 무시할 수 없다.
  3. 규모와 거래량
    순자산이 너무 작거나 거래가 지나치게 뜸한 상품은 피하는 편이 낫다.
    시장의 관심이 적다는 뜻이고, 규모가 계속 쪼그라들면 상장 폐지될 수도 있다. 모든 ETF에는 최소한의 매매가 이뤄지도록 사자와 팔자 호가를 대 주는 유동성공급자(LP)가 있어 거래량이 적어도 사고팔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품이 마음 편하다.
  4. 괴리율
    ETF에는 두 가지 가격이 있다. 담고 있는 자산의 실제 값어치(순자산가치)와 시장에서 실제로 매매되는 시장가격이다. 둘은 대개 붙어 다니지만, 가끔 벌어진다. 이 벌어진 정도가 괴리율이고, 낮을수록 좋은 상품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 것은, 시장가격이 실제 값어치보다 높다고 해서 앞으로 오른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괴리는 일시적인 수급의 문제일 뿐, 그 상품의 전망과는 상관이 없다.
  5. 추적오차
    인덱스 ETF의 임무는 기초 지수를 최대한 똑같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를 비롯한 여러 비용 탓에 실제 성과가 지수와 조금씩 어긋난다. 이 어긋난 정도가 추적오차이며, 작을수록 운용을 잘한 것이다. 추적오차는 눈에 보이는 보수까지 모두 포함한 결과물이라, 어떤 면에서는 보수 숫자 하나보다 더 정직한 성적표다. 앞의 괴리율이 사고파는 과정에서 잠깐 생기는 가격 차이라면, 추적오차는 운용의 결과로 쌓이는 차이다. 괴리율은 시장이, 추적오차는 운용사가 만든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 환헤지 여부
    여기에 하나를 더 얹으면 환헤지 여부다. 미국 주식이나 금처럼 외화 자산을 담은 ETF는 환율이 성과에 섞여 든다. 환율 변동을 지우고 싶으면 ‘(H)’가 붙은 환헤지형을, 달러 분산 효과까지 노린다면 환노출형을 고르면 된다. 정답이 있는 선택은 아니고, 내 포트폴리오에서 그 자산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에 달렸다.

정리하면 이렇다. 같은 지수를 담은 ETF가 여럿일 때는 보수가 낮고, 규모가 넉넉하며, 괴리율과 추적 오차가 작은 쪽을 고르면 대체로 무리가 없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여도, 몇 번 비교하다 보면 금세 눈에 익는 기준이다.

재료는 골고루

이런 기준으로 고르다 보면, 자산군마다 대표 선수를 하나씩 갖추게 된다. 국내 주식,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 신흥국 주식, 국채와 회사채 같은 채권, 그리고 금이나 달러 같은 대체 자산까지. ETF의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자산군을 주식 사듯 손쉽게 담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필진 김성일 3편

자산군마다 맡는 역할이 다르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성장 엔진이고, 국채는 주식이 흔들릴 때 완충해 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금이나 달러 자산은 위기 국면에서 포트폴리오를 지탱한다. 성격이 서로 다른 재료를 갖춰 두는 이유는, 한 자산이 부진할 때 다른 자산이 그 자리를 메워 주기 때문이다. 재료가 골고루 갖춰져야 다음 글에서 이들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 곧 자산 배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릇마다 규칙이 조금 다르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같은 3층이라도 계좌 종류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자산의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필진 김성일 3편

연금저축은 주식형 자산을 100%까지 담을 수 있지만, IRP는 노후 자금의 안정성을 위해 안전자산을 30% 이상 채우도록 정해져 있어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은 70%까지만 가능하다. 앞서 3층을 채우는 순서로 연금저축을 IRP보다 먼저 권한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연금저축이 담을 수 있는 ETF의 폭이 더 넓기 때문이다. 같은 3층이라도 그릇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른 셈이다.

무작정 사기 전에

김정현 씨는 여기까지 읽고 조급함을 누른다. 처음 마음은 요즘 많이들 산다는 ETF를 그냥 하나 담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순서가 생겼다. 무엇을 따라가는 상품인지(기초 지수), 얼마나 싼지(비용), 규모와 거래는 넉넉한지, 괴리율과 추적오차는 양호한지, 환위험은 어떻게 할지를 차례로 확인하는 자기만의 체크리스트다.

덧붙여 조심할 것이 있다. 이름에 ‘레버리지’나 ‘인버스’가 붙은 상품은 지수의 등락을 두 배로 키우거나 거꾸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것으로, 짧게 치고 빠지는 단기 매매에 가깝다. 바쁜 직장인에게 단기 매매 방식은 실천하기 어렵고, 오래 굴려야 할 노후 자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의 인기를 좇는 좁은 주제의 테마 ETF도 마찬가지다. 유행에 올라타기보다, 시장 전체를 넓게 담는 대표 지수부터 채우는 편이 안전하다.

이런 정보는 손품 몇 번으로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의 펀드 공시 시스템, 코스콤이 운영하는 ETFCHECK 같은 곳에서 여러 ETF의 보수와 성과, 괴리율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볼 수 있다. 남이 좋다는 상품을 따라 사는 대신, 이 기준으로 직접 재 보는 습관이 오래갈수록 자산을 지킨다.

재료를 고르는 눈을 갖췄으니, 이제 남은 일은 이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다. 다음 글에서는 김정현 씨가 고른 ETF들을 실제 포트폴리오로 엮는다. 주식과 채권, 국내와 해외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흔들림을 줄이면서도 물가를 이길 수 있는지, 자산 배분의 실전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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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대표이사

국책은행부터 투자자문사까지 20년 이상 현장에서 돈의 흐름을 연구해온 금융 전문가.
연금 투자 분야의 베스트셀러 <연금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마법의 연금 굴리기>의 저자로,
유튜브 채널 ‘김성일 TV’와 강연을 통해 연금과 자산 배분의 실전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김성일의 ‘마법의 연금 포트폴리오’] 3편. 그릇에 담을 재료, ETF를 고르는 법 다시, 김정현 씨의 그릇 앞선 두 글에서 45세 직장인 김정현 씨는 자신의 연금을 진단하고, 노후 자금을 담을 그릇을 준비했다. 방치돼 있던 2층 퇴직연금(DC형)을 원리금 보장형에서 깨워 냈고, 비어 있던 3층에는 연금저축 계좌를 새로 열었다. 세액공제 한도인 연 900만원은 목표로 두되,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형편에 맞는 금액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 1편. 내 연금, 지금 어디쯤 와 있나+ [김성일의 마법의 연금 포트폴리오] 1편. 내 연금, 지금 어디쯤 와 있나 ▶ 2편. 잠든 2층을 깨우고, 비어 있는 3층을 짓는다+ [김성일의 마법의 연금 포트폴리오] 2편. 잠든 2층을 깨우고, 비어 있는 3층을 짓는다 그런데 계좌를 열고 돈을 넣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전 글에서 미뤄 둔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계좌는 어디까지나 그릇이고, 실제로 물가를 이기고 자산을 불리는 일은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 한다. 원리금 보장형에 방치된 퇴직연금이 제자리걸음을 했던 이유도, 그릇은 멀쩡한데 담긴 내용물이 예금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부터는 그 내용물을 다룬다. 오늘의 주제는 재료를 고르는 법, 곧 ETF다. ETF란 무엇인가 ETF는 ‘상장지수펀드’의 줄임말이다. 이름은 낯설어도 구조는 단순하다. 펀드의 장점과 주식의 장점을 한 몸에 합쳐 놓은 상품이라고 보면 된다. 펀드처럼, 한 주만 사도 그 안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종목이 담긴다. 몇만원으로도 분산투자가 되는 셈이다. 동시에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다. 일반 펀드가 사고파는 데 며칠씩 걸리는 것과 다르다. 게다가 운용 보수가 훨씬 싸고, 무엇을 담고 있는지 매일 공개돼 투명하다. 일반 펀드는 보유 종목이 석 달에 한 번 공개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ETF가 담고 있는 주식에서 배당이, 채권에서 이자가 나오면 이를 모아 투자자에게 ‘분배금’이라는 이름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통로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이 분배금은 뒤에서 다룰 은퇴 후 현금흐름과도 이어진다. 정리하면 ETF는 소액으로, 분산해서, 싸게,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투자할 수 있는 도구다. 큰돈이 없고 관리에 시간을 많이 쓰기 어려운 직장인에게 잘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수를 사는 일 ETF를 이해하는 핵심은 ‘지수를 산다’는 개념이다. 펀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펀드매니저가 좋은 종목을 직접 골라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노리는 액티브 펀드이고, 다른 하나는 코스피200이나 S&P500 같은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인덱스(패시브) 펀드다.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액티브가 더 좋아 보이지만, 오랜 기간 여러 나라의 자료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시장을 꾸준히 이기는 펀드매니저는 매우 드물고, 그런 펀드를 미리 골라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액티브 펀드는 보수가 비싸다. 사람과 조사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일반 펀드의 보수가 연 1~2%를 넘나드는 데 비해, 지수만 따라가면 되는 ETF는 대개 0.5% 이하이고 낮은 것은 0.1%도 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해가 갈수록 복리로 벌어진다. 그래서 개인 투자자에게는 시장 전체를 싸게 소유하는 인덱스, 그중에서도 ETF가 합리적인 출발점이 된다. 시장 전체를 통째로 담는 인덱스 방식은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뒤, 낮은 비용을 무기로 반세기에 걸쳐 투자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ETF는 그 인덱스를 주식처럼 편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다듬은 형태다. 어렵게 종목을 고르지 않고도 시장의 평균 성과를 낮은 비용으로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바쁜 직장인에게는 오히려 든든한 무기가 된다. 이름만 읽어도 절반은 안다 ETF는 종목 이름에 규칙이 있다. 중요한 정보를 이름에 담아 두기 때문에, 이름을 읽을 줄 알면 그 상품의 성격이 대략 잡힌다. 예를 들어 ‘KODEX 미국S&P500’이라는 이름을 뜯어보자. 맨 앞의 ‘KODEX’는 이 상품을 만든 자산운용사의 브랜드다. KODEX는 삼성자산운용, TIGER는 미래에셋자산운용, RISE는 KB자산운용, ACE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붙이는 이름표다. 가운데(‘미국S&P500’)는 무엇을 담았는지, 곧 어떤 지수나 자산을 추종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름 끝에 ‘(H)’가 붙어 있으면 환율 변동을 제거한 환헤지형이고, 아무 표시가 없으면 환율에 그대로 노출되는 환노출형이다. 이름 몇 글자만 제대로 읽어도, 누가 만든, 무엇을 담은, 환노출은 어떤 상품인지 절반은 파악되는 셈이다. 무엇을 보고 고르나, 다섯 가지 같은 미국 주식 지수를 담은 ETF만 해도 여러 운용사에서 여럿이 나온다. 참치 통조림에도 여러 브랜드가 있는 것과 같다. 그중 하나를 고를 때 살펴볼 것은 크게 다섯 가지다. 기초 지수ETF가 무엇을 따라가는지가 가장 먼저다. 같은 ‘미국 주식’이라도 대형주 500개를 담은 지수인지, 기술주 중심의 100개를 담은 지수인지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다르다. 상품 이름과 설명에서 어떤 지수를 추종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비용(총보수)ETF를 들고 있는 동안 매년 빠져나가는 총보수는 낮을수록 좋다. 같은 지수를 담은 상품이라면 굳이 비싼 쪽을 고를 이유가 없다. 국내 ETF의 총보수는 대체로 0.3% 안팎으로 일반 펀드의 몇 분의 1 수준이지만, 상품마다 편차가 있으니 비교해 볼 값어치가 있다. 작아 보이는 보수 차이도 수십 년을 곱하면 무시할 수 없다. 규모와 거래량순자산이 너무 작거나 거래가 지나치게 뜸한 상품은 피하는 편이 낫다. 시장의 관심이 적다는 뜻이고, 규모가 계속 쪼그라들면 상장 폐지될 수도 있다. 모든 ETF에는 최소한의 매매가 이뤄지도록 사자와 팔자 호가를 대 주는 유동성공급자(LP)가 있어 거래량이 적어도 사고팔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품이 마음 편하다. 괴리율ETF에는 두 가지 가격이 있다. 담고 있는 자산의 실제 값어치(순자산가치)와 시장에서 실제로 매매되는 시장가격이다. 둘은 대개 붙어 다니지만, 가끔 벌어진다. 이 벌어진 정도가 괴리율이고, 낮을수록 좋은 상품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 것은, 시장가격이 실제 값어치보다 높다고 해서 앞으로 오른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괴리는 일시적인 수급의 문제일 뿐, 그 상품의 전망과는 상관이 없다. 추적오차인덱스 ETF의 임무는 기초 지수를 최대한 똑같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를 비롯한 여러 비용 탓에 실제 성과가 지수와 조금씩 어긋난다. 이 어긋난 정도가 추적오차이며, 작을수록 운용을 잘한 것이다. 추적오차는 눈에 보이는 보수까지 모두 포함한 결과물이라, 어떤 면에서는 보수 숫자 하나보다 더 정직한 성적표다. 앞의 괴리율이 사고파는 과정에서 잠깐 생기는 가격 차이라면, 추적오차는 운용의 결과로 쌓이는 차이다. 괴리율은 시장이, 추적오차는 운용사가 만든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환헤지 여부여기에 하나를 더 얹으면 환헤지 여부다. 미국 주식이나 금처럼 외화 자산을 담은 ETF는 환율이 성과에 섞여 든다. 환율 변동을 지우고 싶으면 ‘(H)’가 붙은 환헤지형을, 달러 분산 효과까지 노린다면 환노출형을 고르면 된다. 정답이 있는 선택은 아니고, 내 포트폴리오에서 그 자산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에 달렸다. 정리하면 이렇다. 같은 지수를 담은 ETF가 여럿일 때는 보수가 낮고, 규모가 넉넉하며, 괴리율과 추적 오차가 작은 쪽을 고르면 대체로 무리가 없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여도, 몇 번 비교하다 보면 금세 눈에 익는 기준이다. 재료는 골고루 이런 기준으로 고르다 보면, 자산군마다 대표 선수를 하나씩 갖추게 된다. 국내 주식,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 신흥국 주식, 국채와 회사채 같은 채권, 그리고 금이나 달러 같은 대체 자산까지. ETF의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자산군을 주식 사듯 손쉽게 담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산군마다 맡는 역할이 다르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성장 엔진이고, 국채는 주식이 흔들릴 때 완충해 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금이나 달러 자산은 위기 국면에서 포트폴리오를 지탱한다. 성격이 서로 다른 재료를 갖춰 두는 이유는, 한 자산이 부진할 때 다른 자산이 그 자리를 메워 주기 때문이다. 재료가 골고루 갖춰져야 다음 글에서 이들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 곧 자산 배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릇마다 규칙이 조금 다르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같은 3층이라도 계좌 종류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자산의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연금저축은 주식형 자산을 100%까지 담을 수 있지만, IRP는 노후 자금의 안정성을 위해 안전자산을 30% 이상 채우도록 정해져 있어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은 70%까지만 가능하다. 앞서 3층을 채우는 순서로 연금저축을 IRP보다 먼저 권한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연금저축이 담을 수 있는 ETF의 폭이 더 넓기 때문이다. 같은 3층이라도 그릇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른 셈이다. 무작정 사기 전에 김정현 씨는 여기까지 읽고 조급함을 누른다. 처음 마음은 요즘 많이들 산다는 ETF를 그냥 하나 담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순서가 생겼다. 무엇을 따라가는 상품인지(기초 지수), 얼마나 싼지(비용), 규모와 거래는 넉넉한지, 괴리율과 추적오차는 양호한지, 환위험은 어떻게 할지를 차례로 확인하는 자기만의 체크리스트다. 덧붙여 조심할 것이 있다. 이름에 ‘레버리지’나 ‘인버스’가 붙은 상품은 지수의 등락을 두 배로 키우거나 거꾸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것으로, 짧게 치고 빠지는 단기 매매에 가깝다. 바쁜 직장인에게 단기 매매 방식은 실천하기 어렵고, 오래 굴려야 할 노후 자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의 인기를 좇는 좁은 주제의 테마 ETF도 마찬가지다. 유행에 올라타기보다, 시장 전체를 넓게 담는 대표 지수부터 채우는 편이 안전하다. 이런 정보는 손품 몇 번으로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의 펀드 공시 시스템, 코스콤이 운영하는 ETFCHECK 같은 곳에서 여러 ETF의 보수와 성과, 괴리율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볼 수 있다. 남이 좋다는 상품을 따라 사는 대신, 이 기준으로 직접 재 보는 습관이 오래갈수록 자산을 지킨다. 재료를 고르는 눈을 갖췄으니, 이제 남은 일은 이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다. 다음 글에서는 김정현 씨가 고른 ETF들을 실제 포트폴리오로 엮는다. 주식과 채권, 국내와 해외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흔들림을 줄이면서도 물가를 이길 수 있는지, 자산 배분의 실전으로 들어가보자. aboutAUTHOR김성일업라이즈투자자문 대표이사국책은행부터 투자자문사까지 20년 이상 현장에서 돈의 흐름을 연구해온 금융 전문가. 연금 투자 분야의 베스트셀러 <연금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마법의 연금 굴리기>의 저자로, 유튜브 채널 ‘김성일 TV’와 강연을 통해 연금과 자산 배분의 실전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김성일의 ‘마법 연금 포트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