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울고 웃어야 했던 영국의 상인들
1911년 6월 22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조지 5세와 그의 아내 메리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새 국왕의 즉위를 기념하는 이 행사는 당시 최대 규모의 국제적 이벤트 중 하나였다.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외교사절은 물론이고, 유럽 주요 제국의 왕실 대표들이 빠짐없이 참석한 20세기 마지막 대관식이었다. 대관식 행렬을 따라 세워진 50여 개 관람석 주변으로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늘날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날의 대관식은, 보험 역사에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된 날이었다.
조지 5세의 대관식은 당시 영국의 상인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이벤트였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관람석을 설치한 사업자들은 입장권 판매를 통해 훨씬 많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었다. 음식점이나 술집, 기념품 가게, 호텔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대관식은 다시 찾아오기 힘든 최고의 대목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대관식 날, 행여라도 큰 비가 쏟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인들이 품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상인들의 근심을 덜어 준 강우 보험

수많은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 거액의 투자를 한 상인들은 ‘비’라는 위험 앞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이들의 처지에도 여지없이 들어맞는 말이었다.
대관식 날 비가 내릴 것을 염려한 상인들은, 비로 인한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새로운 보험상품을 활용했다. 바로 강우 보험이다. 행사 당일 일정량 이상의 비가 내리면, 상인들에게 미리 약속된 수준의 보상금을 지급해 주는 보험 상품이었다.
물론 이때까지 고려되지 않던 새로운 위험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이러한 위험을 인수할 보험회사가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보험업자들의 연합조직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가 있는 한, 이 같은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보험업자들 사이에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을 통해, 강우 위험에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대관식 당일 약간의 소나기가 내리긴 했지만 큰 비는 내리지 않아 실제로 보험금이 지급되지는 않았다).
새롭게 나타난 이색 보험들

강우 보험은 해상무역이나 화재, 생명 등을 대상으로 했던 전통 보험의 영역을 또 한번 확장한 것이었다. 비와 같은 날씨나 대관식 등 대형 행사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서도 보험이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우 보험은 뒤이어 나타난 여러 이색 보험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다.
1970년대에는 눈(snow)을 위험 대상으로 하는 강설 보험도 첫선을 보였다. 치명적인 폭설로 피해를 입거나, 눈이 내리지 않아 발생하는 영업손실을 보상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가령 눈이 부족해 영업에 지장을 받는 스키장이라면 이만한 대비 수단도 없을 것이다).
유명인의 신체 부상이나 그에 따른 경제적 손해를 보상해 주는 키 퍼슨(key person) 보험 역시 비슷한 시기 등장한 이색 보험 가운데 하나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가수는 다리나 목소리를 대상으로 수억 달러 규모의 보험에 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등장한 이색 보험 중 단연 색다른 것을 들자면 UFO 보험을 빼놓을 수 없다. 1988년 미국 플로리다의 한 보험사가 출시한 이 상품에 가입하면, 외계인의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납치되었을 때 최대 1,0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단돈 20달러만으로 가입이 가능하나 보험금은 1년에 1달러씩 총 1,000만 년에 걸쳐 지급된다. 다분히 홍보 목적을 띤 이벤트 상품의 성격이 강하지만, 현재까지 약 2만 명 이상의 고객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생활 보험
2000년대를 전후해서는 생활 속 위험을 대상으로 한 각양각색의 보험들이 앞다투어 등장했다. 연인을 위한 선물이나 데이트 비용을 지원하는 연인 보험, 미혼자의 갑작스러운 결혼에 대비하는 독신자 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는 소화불량에 따른 치료비를 보상받는 대식가 보험, 자국 월드컵 대표팀의 조기 탈락에 따른 충격을 보상해 주는 월드컵 보험까지 출시되며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많은 상품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며 시장에서 사라졌다. 다수의 가입자 확보와 이를 통한 위험의 분산 등 보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한 탓이었다.
이에 반해 일부 상품들은 탄탄한 보험 수요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흔히 미니보험이나 생활 보험으로 불리는 것들인데, 아래에 소개된 보험들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들이다.

초창기 보험은 상인의 재산 피해나 화재, 사망 등 전형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에 부응해 보험은 보다 정교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
그 결과 보험은 이제 현대인의 일상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보험을 두고 현대인의 생활필수품 중 하나로 여기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 김종승 교수의 ‘보험 속 역사, 역사 속 보험’ 시리즈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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