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다.

8·3 세제개편의 철학은 명료합니다.
1세대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를 2028년부터 ‘장기 거주 소득공제’로 바꾸고, 2029년에는 보유 공제를 없애 거주기간에만 연 8%, 최대 80%를 공제하기로 했죠. 종합부동산세도 거주 1주택자는 기본공제를 14억원으로 높였지만, 비거주 1주택자는 9억원으로 낮췄습니다.
어려운 세법 개정으로 보이지만 8·3 세제개편의 철학을 요약하자면 ‘실거주주의’를 채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집을 보유만 하지 말고 직접 살라는 신호인 셈입니다.
실거주 중심 정책의 맹점 – 누가 살아야 적절한 집인가
문제는 실거주주의가 놓치고 있는 ‘임차인’입니다. 주택의 실수요 여부를 소유자의 거주 여부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단순히 집주인이 살면 실수요이고, 임차인이 살면 비(非)실수요로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임차인의 장기 거주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임차인 역시 해당 지역에 전입해 아이를 키우고, 출퇴근하며, 임대료를 내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해당 주택은 삶을 이어가는 생활 터전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서는 소유자의 실제 거주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해당 주택의 거주 가치를 ‘소유자’가 들어와서 살 집으로 보고 ‘임차인’이 살 집으로는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실거주주의’가 갖는 맹점입니다. 실제로 2020년 6·17대책 이후 실거주 요건 강화와 임대차 시장의 변화가 이어졌던 경험을 고려하면, 이번 개편 역시 임대차 시장에 미칠 영향을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실거주주의를 채택한 세제개편으로 최소한 임차 시장의 불안을 고려했다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임차 주택 공급정책도 세제개편과 함께 나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국 현재 상태로는 임대차 수급 불안을 완화할 대책이 없으므로, 소유자의 실거주를 유도하는 정책이 강화될수록, 그 집에 이미 살고 있는 임차인은 정책의 고려 대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월세·전세·매매는 하나의 물길

만약 8·3 세제개편이 큰 수정 없이 시행될 경우, 임대차 시장의 변화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선택하면서 임대차 계약 갱신이 어려워지고, 전세·월세 매물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죠. 남아 있는 임대주택의 희소성이 커지면서 임차료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해당 지역의 임차인 실거주자 역시 학군·직장·돌봄 때문에 특정 지역에 살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가 아닌 임차 가구는 더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높은 임차료 부담 속에 놓여야 하며 주거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임차료 상승이 과도할 경우 다시 “차라리 사자”는 매수 수요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매매를 억누르기 위한 세제가 임대차 불안을 거쳐 다시 매수 수요를 만드는 역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월세·전세·매매는 절연된 세 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물길입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월세·전세를 매매와 분리하는 공급 방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해 온 국내 주택시장의 오래된 특징입니다.
실거주 기준, 현실과의 간극
한 집을 소유하면서 다른 집에 거주하는 가구의 사정 역시 다양하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이동, 자녀 교육, 부모 돌봄, 재건축, 주택 면적의 불일치 등으로 ‘자가 보유·타가 거주’를 선택하는 1주택자는 적지 않습니다. 정부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비거주’의 요건을 마련했지만, 사람마다 주거 여건과 생활 방식이 다른 만큼 이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임차 가구 비중이 높은 서울에서 ‘실거주 중심’의 정책은 실제 거주 현실과 간극이 있습니다. 서울의 집을 임차 놓은 가구에 실거주를 일률적으로 유도할 경우, 두 임대차 계약이 동시에 흔들립니다. 한 명의 집주인을 입주시키기 위해 두 가구의 연쇄적인 주거 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임대 공급을 유지할 정책도 필요하다

이번 8·3 세재개편안에는 소유자의 직접 거주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한 한편, 상생임대 제도 및 주택 임대사업자 특례의 일몰 및 처분 기한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1주택자의 실거주 유인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 임대주택 공급과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상생임대는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한 임대인에게 1주택 비과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의 2년 거주 요건을 면제해 주던 제도입니다. 임차인의 계속 거주와 임대료 안정을 세금으로 보상한 드문 장치였죠.
그런데 정부안은 올해 말 특례를 종료하고, 기존 계약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안에 주택을 팔아야만 혜택을 유지하도록 처분 기한을 두었습니다. 소유자의 직접 거주에 대한 보상은 강화된 반면, 상대적으로 임차인의 안정적인 거주를 지원하는 보상은 축소된 것입니다. 주택 임대 사업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일몰 기간을 두어 주택을 처분하는 규정을 두었지만 그렇게 감소하는 장기 임대주택의 공급을 누가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개편안 역시 일부 등록임대주택의 임대 기간을 거주기간으로 인정하여 연 2%(최대 30%)의 장기 보유·거주 공제를 적용하는 등 보완책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정대상지역 내 매입임대 아파트가 제외되는 데다, 임대 기간이 공제율 산정에만 반영될 뿐 ‘1주택 비과세 2년 거주 요건’에는 합산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민간 임대차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1주택 임대인은 혜택에서 제외되어 실효성에 한계가 지적됩니다.
대안은 ‘주거 안정 기여’
민간 임대차 시장의 과반을 개인 임대인이 담당해 온 국내 시장 구조를 고려할 때, 실거주 요건 강화에 따른 임대 공급 감소를 보완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 ‘주거 안정 기여 공제’ 도입 : 실거주 개념을 소유자 거주에만 한정하지 않고 ‘주거 안정 기여’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입니다. 기본 보유기간 공제(연 2%)를 유지하면서, 실거주하거나 장기 임대를 제공하는 경우 공제율(최대 15년 30%)을 적용해 임대 공급 유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공급자 중심의 금융 구조 개편 : 기존 전세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 건물 준공 후 임대 현금흐름으로 장기 상환하는 초장기 모기지 등 선진화된 금융 모델 도입이 요구됩니다.
- 기업형 장기 임대 활성화: 리츠(REITs) 및 전문 임대법인이 초기 건설 단계부터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토지·보증·금융·세제를 패키지로 지원하는 ‘건설형’이나 ‘매입형’의 장기 임대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임대차 시장 특성을 정책에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간 민간 임대차 시장의 99%를 개인들이 도맡아 왔습니다. 자가 거주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임대 공급에 대한 보완을 개인이 아닌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시행할 구조를 만들어 놔야 합니다.
임대 기간, 임대료 상승률, 보증금 보호 등 주거 안정 지표와 세제 혜택을 연동함으로써, 개별 임대인의 사정이나 세제상 판단에 따라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지표부터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근본적으로 정책의 성과지표도 바뀌어야 합니다. 자가점유율만 볼 것이 아니라 임차인의 평균 거주기간, 갱신 거절률, 전·월세 매물수, 임대료 상승률을 함께 봐야 합니다. 또 임차료가 적절히 관리되는지 봐야 합니다. 자가거주율이 높아졌더라도 임차료가 크게 상승한다면, 이를 주거 안정으로 볼 수 있을까요? 거주율만으로 주거 안정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제개편 후 집주인의 실거주는 늘어난 반면 임차인의 강제 이동과 주거비가 늘었다면 그것은 주거 안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소유자 한 명이 ‘실거주자’로 늘어나는 통계 이면에는, 해당 주택에서 거주하던 임차인 한 가구의 주거 불안정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집은 ‘사는 곳’이라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집주인만이 아닙니다. 좋은 세제는 소유자를 집 안으로 밀어 넣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제도여야 합니다. 실거주를 장려하되 임차인의 주거 안정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8·3 세제개편이 국회로 가기 전에 반드시 보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빈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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