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보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선사시대부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인류는 예기치 못한 위험이 닥칠 때마다 ‘협력’의 본능을 발휘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던 시절에도 구성원 중 일부가 부상을 당하거나 가족을 잃게 되면 공동체 전체가 이들의 몫을 대신했다. 말 그대로 상부상조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보험’과도 비슷하다. 비록 공동체의 결속력이나 위험 관리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일정 수준의 보험료를 납부해 두면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불운이 닥쳤을 때 가입자들이 마련한 공동의 자금으로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다.
이처럼 보험은 개인에게 발생한 위험을 공동체 전체에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금융수단이다.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들이 외치는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는 보험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보험 제도는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처음 탄생하게 됐을까?
성공하면 이익 분배, 실패하면 의무 면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같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강과 바다를 중심으로 곡식∙직물∙목재∙금속 등을 사고 팔며 문명의 번영을 이끈 고대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거센 풍랑으로 인한 침몰, 해적 출현과 같은 사고는 이들의 조그마한 목재 선박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었다. 별과 바람, 조수의 흐름을 읽고 항해에 나섰지만, 그 후의 일은 전적으로 신의 가호와 행운에 의지해야 했다.
자금력이 부족했던 초기 무역상들은 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자들로부터 빌려서 마련했다.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는 거대한 재앙과 마찬가지였다. 재산 전부를 잃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항해가 실패하면,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란 사실상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역상과 투자자들은 슬기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항해가 성공하면 이익을 나누어 갖되, 항해가 실패했을 때는 빌린 돈을 갚아야 할 의무를 면제해 주기로 한 것이다. 항해에 따르는 위험을 분담하기 위해 찾아낸 타협점이었다.
위험한 항해가 성공하면 이익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의무가 면제된다는 조건으로 행해진 ‘모험대차(冒險貸借)’라 불린 이 같은 거래는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중세 상인들, ‘보험료’를 지급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험 분담 기술이 더욱 정교해졌다.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로도스 섬 인근에서 ‘공동해손’이라는 제도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 거센 풍랑이나 좌초로 화물의 일부를 버려야만 했을 때, 다른 화주(화물 주인)들과 선주(배 주인)가 그 손해를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개별 화물의 위험을 관계자 전원이 나누어 갖도록 한 이 원칙은 이후 근대 해상보험의 기초 원리로 자리잡게 된다.
12세기 말, 지중해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무역 거래가 성행했다. 이 시기의 금융업자들은 항해가 성공하면 빌려준 돈의 22~33%에 이르는 이자를 지급받았는데, 이는 당시 적용되던 대출금리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초과 이율이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13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이자를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 교회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자 상인들은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항해에 따르는 위험은 어떤 식으로든 대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탄생한 건 기존의 모험대차 방식에서 이자 거래를 떼어낸 방식이었다. 무역상들은 항해에 나서기 전 선불수수료를 지급하고, 항해 실패 시 금융업자들이 손실을 책임지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대신에 항해가 성공하면, 이미 지급했던 선불수수료는 위험을 감수한 금융업자의 이익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선불수수료가 지금의 보험료와 유사하게 쓰인 것이었다.
근대적 보험이 탄생하다, 해상보험

그렇지만 모험대차와 대비해 ‘보험대차’로 불렸던 이 방식 역시 오늘날의 보험 형태와는 차이가 있었다. 항해 실패에 따른 보상금은 형식상 화물에 대한 ‘가상의’ 매매계약 형태를 빌려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항해에 나서기 전 화물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두고, 항해가 실패하면 그 손해를 매매대금 명목으로 보상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나타난 것은 14세기 중후반 무렵. 이 시기 제노바, 베니스, 피사와 같은 지역에서는 보험 가입자와 배상 의무자, 보험료, 보험 사고 등이 명시된 문서들이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계약서의 내용들도 점차 일반화되면서 오늘날 보험증권의 효시를 이루게 되었다.
보험증권을 의미하는 ‘폴리시(policy)’, 보험료에 해당하는 ‘프리미엄(premium)’, 보험사와 보험 계약자를 일컫는 ‘인슈어러(insurer)’, ‘인슈어드(insured)’ 등의 용어는 모두 당시의 보험계약을 토대로 한 것들이다.
이후로 보험증권은 15세기 이후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영국, 벨기에 등 해상 무역의 발전 경로를 따라 널리 전파되었다.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새로운 보험상품이 나타나기 전까지, 해상보험은 유일한 보험이자 상인들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해상 무역에서 시작된 보험의 탄생. 하지만 이때까지의 보험은 해상 무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한계는 또 다른 시작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법, 이는 보험이 장차 다른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새로운 위험은 새로운 보험을 불러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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