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혹은 친척 어르신의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적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적은 없었는지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르신과 함께 걷던 중에, 말씀을 걸거나 질문을 드렸을 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시는 모습. 부모님이나 어르신이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면, 다음의 글을 특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돌 무렵부터 걷기 시작해서 평생토록 걷습니다. 직립 보행하도록 진화한 인류에게 걷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봐도, 또 한 개인을 두고 보아도 수십 년을 매일 같이 반복한 걷기이니, 걷기가 어려울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걸으면서 대화도, 전화 통화도, 이런저런 생각도 그냥 합니다. 문자를 보내거나 메신저를 사용하는 일도 걸으면서 얼마든지 합니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어르신들 중에는 누군가가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거나 또는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발걸음부터 멈추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그저 연세가 들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1997년 랜싯(Lancet)이란 저널에 이에 대한 논문1이 게재됩니다.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웨덴의 한 동네에 거주하는 평균 나이 80.1세인 58명의 어르신의 모습을 녹화했습니다. 걷다가 말을 걸었을 때 가던 걸음을 멈추는 어르신이 12명이었고,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어르신이 46명이었습니다.
녹화를 시행한 시점으로부터 6개월간 이 두 그룹의 낙상 이력을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대화를 시켰을 때 걸음을 멈춘 어르신 중 83%가 녹화 후 6개월 중에 한 번 이상은 넘어졌습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화를 하신 분들 중에 낙상이 발생한 경우는 20%에 불과했습니다. 걷다가 멈춘 어르신들이 그렇지 않은 어르신들에 비해 걸음도 더 느렸고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도 더 많이 받았습니다.

2025년에 코튼(Cotton)과 버기즈(Verghese)는 ‘말하면서 걷기 검사(Walking While Talking, 이하 WWT)’에 대한 그간의 수많은 연구를 정리한 논문2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2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WWT의 임상적 가치, 의미, 타당성, 신뢰도가 일관되게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말하면서 걷기(WWT)’ 를 할 때 걸음이 현저히 느려지거나, 걸음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 노쇠와 치매를 중요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을 재차 조명함으로써 무척 간단한 WWT가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언뜻 매우 간단해 보이는 걷는다는 행위는, 실은 운동기능(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균형을 잡는 것과 같은 일)과 인지 기능(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결정하는 일 등)이 모두 필요한 행위입니다. 건강한 뇌는 걷는 데 필요한 운동기능과 인지 기능 정도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처리합니다. 그러고도 기능이 남아 걷는 것 말고도 다른 일도 동시에 해낼 수 있습니다. 물이 가득 담긴 컵이나, 쟁반을 들고도 편히 걸을 수 있고, 전화 통화에 집중해서도 잘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않는 뇌는, 걷는 데 필요한 운동기능과 인지 기능을 처리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래서 다른 걸 더 할 겨를이 없습니다. 누가 말을 시키면 그 의미를 해석하고 마땅한 답을 찾느라 걷는 걸 잠시 멈춰야 합니다.
‘이중 과제(dual task)’라고 하는 이것은 동시에 수행하도록 주어지는 두 과제를 말합니다. 걷기와 말하기, 걷기와 전화받기, 쟁반 든 채 걷기… 이런 것들이 모두 이중 과제의 실제 예입니다. 두 가지 과제를 처리하려면 한정된 뇌의 자원을 나눠 써야 하니 뇌는 힘에 부칩니다. 당연히 한 번에 하나를 하는 것이 두 가지 과제를 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그래서 이중 과제를 시켜 보면 뇌의 자원이 풍부한지 부족한지, 뇌의 처리능력은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 다시 말해 뇌가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 번잡한 지하철역에서 유독 천천히 걷는 앞사람 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백이면 백 그 앞사람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핸드폰을 보며 걸으면 그냥 걸을 때보다 느려집니다. 문자를 하면서 걸으면 핸드폰을 보기만 할 때보다도 걸음이 더 느려집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걸으면 느려지는 이유 역시 뇌가 이중 과제를 처리하느라 벅차기 때문입니다. 즉, 건강한 뇌에서도 이중 과제를 처리할 때에 단독 과제를 처리할 때보다 느립니다. 그런데 이런 느려짐이 나이 든 뇌와 건강하지 못한 뇌에서는 훨씬 더 심해지는 것이고요.
이중 과제는 뇌가 건강한지를 테스트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중 과제를 무리 없이 잘 해내면 건강한 뇌, 어려워하거나 (걸음이 느려진다면) 못하면 (걸음을 멈춰버리면) 건강하지 못한 뇌입니다. 제가 보는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같은 뇌질환을 앓는 환자분들은 이중 과제를 유난히 어려워합니다. 잘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말을 걸었을 때 걸음을 딱 멈추는 것으로 쉽게 낙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방법은 가까운 미래에 치매나 파킨슨병이 발병할지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부모님과 길을 걷다가 넌지시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 가벼운 산수 문제 같은 것을 내 보셔도 됩니다.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시면서 대답을 잘 하시면 ‘아, 부모님 뇌가 건강하구나’ 하고 안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추신다면 부모님의 뇌 건강을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걸음걸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 문헌
- Lundin-Olsson, L., Nyberg, L., & Gustafson, Y. (1997). Stops walking when talking as a predictor of falls in elderly people. The Lancet, 349(9052), 617. ↩︎
- Cotton, K., & Verghese, J. (2025). Two decades of the walking while talking test: a narrative review.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Directors Association, 26(3), 105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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