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8

[김종승 교수의 보험 속 역사, 역사 속 보험] 6화.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안전망, 사회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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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재상, 최초의 사회보험을 도입하다

1871년, ‘쇠와 피’를 앞세워 독일 통일의 과업을 달성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철혈재상’으로 불린 그의 지휘 아래, 느슨한 연방국가 형태였던 독일은 일약 유럽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연이어 격파한 후, 4천만 이상의 인구와 넓은 영토,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했다. 여기에 철강과 석탄, 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이 급성장하며, 경제력 면에서도 초강대국의 위용을 갖추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쟁 특수로 호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1873년부터는 거품 붕괴와 함께 장기 불황에 직면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의 부작용은 대중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실업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자본가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부를 축적했다.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철폐를 요구하고, 사회주의 이념이 득세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통일 독일제국의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에게는 날로 격화되는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그가 활용한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국가적 책임과 보험 기능이 결합된 공적보험(혹은 사회보험)을 도입한 것이었다.

의료보험부터 실업보험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사회보험

사실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사회보험은 박애주의와 같은 숭고한 이념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의 체제 안정을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면이 컸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사회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서, 사회보험과 같은 복지정책을 활용한 것이었다.

Kyobo 필진 김종승 6편01

시작은 1883년 도입된 ‘의료보험’이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3분의 2, 3분 1씩 보험료를 부담하면, 가입자들은 전례 없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도입된 최초의 사회보험이었다.

이듬해에는 또 다른 공적보험인 ‘산재보험’도 도입되었다. 사용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재원으로, 노동자들은 사고나 재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1889년에는 노후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연금보험’도 등장했다. 이를 통해 70세 이상의 고령자나 근로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기적인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독일의 사회보험이 성공리에 안착하자, 빈부격차 확대 등 비슷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던 유럽 국가들 역시 하나둘씩 사회보험을 도입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1930년대까지 사회보험은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1911년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실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실업보험’도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현대사의 비극이 불러온 복지국가의 탄생

인류 최대의 비극이자 약 6,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할 국가적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대공황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만 30%가량의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대다수 가정이 경제적 고통에 허덕여야 했다. 전쟁의 폐해, 대량 실업, 빈곤과 같은 거대한 위험 앞에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국가 말고는 없었다.

1942년 영국에서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복지국가 시대의 도래를 불러온 기폭제였다.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의 청사진을 담고 있던 이 보고서에서는, “가난, 질병, 무지, 불결, 게으름”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지목했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Kyobo 필진 김종승 6편02

이를 계기로 영국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사회복지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가족수당, 무상의료,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폭넓은 복지 수단들이 도입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 역시 공적 보험의 지원 대상과 범위를 점차적으로 넓혀 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는 현대 복지국가의 개념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다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 둔화와 복지지출 증가, 과도한 복지의존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속가능한 복지제도 운영은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위험관리를 위한 최후의 보루, 공적보험

Kyobo 필진 김종승 6편03

공적 보험이 도입된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데, 1963년 도입된 산재보험이 시초였다. 이후 1977년 의료보험(현재의 건강보험), 1988년 연금보험, 1993년 고용보험 등이 순차적으로 도입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적 보험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예상치 못한 실직이나 은퇴와 같은 위험 앞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보험은 민간 보험사를 통해 제공되는 손해보험, 생명보험 상품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한 수단으로서, 민영보험의 혜택이 닿기 어려운 분야를 중심으로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 주고 있다.

일정 수준의 보험료 납부조차 사치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적 보험이야말로 인생 최후의 보루다. 이렇듯 콜레기아(collegia), 길드(guild)와 같은 단체를 통해 구성원들간 위험을 분담해 오던 전통은, 오늘날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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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승

역사와 인문으로 금융을 해석하는 전문 커뮤니케이터

변호사, 금융연수원 교수
금융 교양서인 <경제 에스프레소 요즘 금융>등 발간을 통해 독자들의 금융 문해력 향상을 돕고 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김종승 교수의 보험 속 역사, 역사 속 보험] 6화.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안전망, 사회보험 철혈 재상, 최초의 사회보험을 도입하다 1871년, ‘쇠와 피’를 앞세워 독일 통일의 과업을 달성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철혈재상’으로 불린 그의 지휘 아래, 느슨한 연방국가 형태였던 독일은 일약 유럽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연이어 격파한 후, 4천만 이상의 인구와 넓은 영토,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했다. 여기에 철강과 석탄, 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이 급성장하며, 경제력 면에서도 초강대국의 위용을 갖추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쟁 특수로 호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1873년부터는 거품 붕괴와 함께 장기 불황에 직면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의 부작용은 대중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실업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자본가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부를 축적했다.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철폐를 요구하고, 사회주의 이념이 득세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통일 독일제국의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에게는 날로 격화되는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그가 활용한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국가적 책임과 보험 기능이 결합된 공적보험(혹은 사회보험)을 도입한 것이었다. 의료보험부터 실업보험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사회보험 사실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사회보험은 박애주의와 같은 숭고한 이념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의 체제 안정을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면이 컸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사회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서, 사회보험과 같은 복지정책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 시작은 1883년 도입된 ‘의료보험’이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3분의 2, 3분 1씩 보험료를 부담하면, 가입자들은 전례 없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도입된 최초의 사회보험이었다. 이듬해에는 또 다른 공적보험인 ‘산재보험’도 도입되었다. 사용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재원으로, 노동자들은 사고나 재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1889년에는 노후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연금보험’도 등장했다. 이를 통해 70세 이상의 고령자나 근로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기적인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독일의 사회보험이 성공리에 안착하자, 빈부격차 확대 등 비슷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던 유럽 국가들 역시 하나둘씩 사회보험을 도입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1930년대까지 사회보험은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1911년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실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실업보험’도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현대사의 비극이 불러온 복지국가의 탄생 인류 최대의 비극이자 약 6,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할 국가적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대공황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만 30%가량의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대다수 가정이 경제적 고통에 허덕여야 했다. 전쟁의 폐해, 대량 실업, 빈곤과 같은 거대한 위험 앞에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국가 말고는 없었다. 1942년 영국에서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복지국가 시대의 도래를 불러온 기폭제였다.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의 청사진을 담고 있던 이 보고서에서는, “가난, 질병, 무지, 불결, 게으름”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지목했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를 계기로 영국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사회복지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가족수당, 무상의료,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폭넓은 복지 수단들이 도입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 역시 공적 보험의 지원 대상과 범위를 점차적으로 넓혀 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는 현대 복지국가의 개념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다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 둔화와 복지지출 증가, 과도한 복지의존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속가능한 복지제도 운영은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위험관리를 위한 최후의 보루, 공적보험 공적 보험이 도입된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데, 1963년 도입된 산재보험이 시초였다. 이후 1977년 의료보험(현재의 건강보험), 1988년 연금보험, 1993년 고용보험 등이 순차적으로 도입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적 보험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예상치 못한 실직이나 은퇴와 같은 위험 앞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보험은 민간 보험사를 통해 제공되는 손해보험, 생명보험 상품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한 수단으로서, 민영보험의 혜택이 닿기 어려운 분야를 중심으로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 주고 있다. 일정 수준의 보험료 납부조차 사치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적 보험이야말로 인생 최후의 보루다. 이렇듯 콜레기아(collegia), 길드(guild)와 같은 단체를 통해 구성원들간 위험을 분담해 오던 전통은, 오늘날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aboutAUTHOR김종승역사와 인문으로 금융을 해석하는 전문 커뮤니케이터변호사, 금융연수원 교수금융 교양서인 <경제 에스프레소 요즘 금융>등 발간을 통해 독자들의 금융 문해력 향상을 돕고 있다.※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김종승 교수의 보험 속 역사, 역사 속 보험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