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1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제5화. 죽는 날까지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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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의 네 번에 걸친 암 투병을 옆에서 지켜보며,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는 뇌에 네 번째 암이 발병했음에도 그전의 일상을 지속하고 싶어 했다.

한창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때였다. 종양내과 진찰실 앞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엄마가 말했다.

유미작가 간병 일기 5화 진정한 웰다잉

나 오늘 진료 끝나고 친구들 모임에 갈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혼자서 걷지도 못하면서 무슨 모임에 간다고 그래.

갈 거야. 내가 총무라서 회비 장부 가지고 가야 돼. 다들 나 기다린다고.

장부는 내가 찾아서 아줌마들한테 보내줄게. 걱정하지 마.

아픈 상황에서도 자꾸 뭔가 하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왜 밖으로 나가려 하고, 사람들을 만나려 하는 걸까? 아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오늘 내가 직접 갈 거야.

안 된다니까? 이 몸으로 어딜 간다 그래. 엄마, 억지 좀 부리지 마!

너 안 된다는 말 좀 그만해. 나… 지금까지 암 네 번 걸렸는데 한 번도 안 울었거든? 근데 지금 너무 서글픈 기분이 들어.

유미 간병일기 5화

엄마가 눈을 감았다. 양쪽 볼에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지? 까마득해서 기억도 안 났다. 이전 세 번의 암 투병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씩씩하게 치료 받던 엄마였다. 엄마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엄마의 깡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나 사람들한테 살아 있다고 알리고 싶어. 얼굴 보여주고 싶다구. 어디서 들은 얘긴데, 모임에서 갑자기 사라지거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조용해졌다가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죽은 거래.

그 말에, 엄마의 행동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엄마는 사회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거구나.

예전에는 사람이 크게 아프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당연하고, 환자 본인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픈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파서 기운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회와 이어지고자 했고, 기존에 영위하던 일상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늙고 병들었다 해도 사회적 존재로 남고자 하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살아있기에. 엄마는 이 마음을 ‘죽는 날까지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엄마는 암이 뇌까지 전이된 상황에서도, 몸무게가 28kg까지 빠져서 거동이 어려울 때도, 안전한 요양시설에서 케어받으며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대신 위험천만하지만 ‘진짜 삶’으로 뛰어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기꺼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험을 감수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유미 간병일기 5화

보통 암이나 치매 등에 걸린 어르신들은 집에서 돌봄 받거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 요양시설에서 지낸다. 이들은 집이든 요양시설이든 거의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관리하는 방식은 대부분 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최대한 수명을 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다 낙상 사고가 발생하거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실종될 수 있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밤에 잠이 안 와도 불을 켤 수가 없었고, 꽃과 잔디가 아름다운 정원이 통유리창 밖으로 펼쳐져 있어도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생활의 리듬을 방해할까 봐, 나가서 돌아다니다 넘어져서 다칠까 봐, 혹은 돌발 상황이 발생해 부상을 입을까 봐… 이유는 많았다.

이처럼 요양시설에서는 거의 모든 자유가 통제된다. 단시간의 외출이나 외박, 식사, 간단한 신체 활동 외에는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리던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없었다.

유미 간병일기 5화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병들었을 뿐인데,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모든 자유 의지가 통제된다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있을까? 환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시도도 못 하게 하는 대신에, 그 간절한 마음에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해볼 수 있게 돕는다면 어떨까?

막무가내로 떼 쓰는 노인들에게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는 대신, 마음을 헤아려주고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돕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돌봄 자체도 그전보단 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에게 늘 “안 된다”고만 말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엄마의 선택을 먼저 막아 섰던 순간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태도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엄마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들을 무조건 막기보다 어디까지 가능할지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여전히 불안했고,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은 분명 그전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나에게 ‘웰다잉’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abou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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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제5화. 죽는 날까지 사는 것처럼 친정엄마의 네 번에 걸친 암 투병을 옆에서 지켜보며,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는 뇌에 네 번째 암이 발병했음에도 그전의 일상을 지속하고 싶어 했다. 한창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때였다. 종양내과 진찰실 앞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엄마가 말했다. 나 오늘 진료 끝나고 친구들 모임에 갈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혼자서 걷지도 못하면서 무슨 모임에 간다고 그래. 갈 거야. 내가 총무라서 회비 장부 가지고 가야 돼. 다들 나 기다린다고. 장부는 내가 찾아서 아줌마들한테 보내줄게. 걱정하지 마. 아픈 상황에서도 자꾸 뭔가 하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왜 밖으로 나가려 하고, 사람들을 만나려 하는 걸까? 아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오늘 내가 직접 갈 거야. 안 된다니까? 이 몸으로 어딜 간다 그래. 엄마, 억지 좀 부리지 마! 너 안 된다는 말 좀 그만해. 나… 지금까지 암 네 번 걸렸는데 한 번도 안 울었거든? 근데 지금 너무 서글픈 기분이 들어. 엄마가 눈을 감았다. 양쪽 볼에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지? 까마득해서 기억도 안 났다. 이전 세 번의 암 투병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씩씩하게 치료 받던 엄마였다. 엄마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엄마의 깡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나 사람들한테 살아 있다고 알리고 싶어. 얼굴 보여주고 싶다구. 어디서 들은 얘긴데, 모임에서 갑자기 사라지거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조용해졌다가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죽은 거래. 그 말에, 엄마의 행동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엄마는 사회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거구나. 예전에는 사람이 크게 아프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당연하고, 환자 본인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픈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파서 기운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회와 이어지고자 했고, 기존에 영위하던 일상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늙고 병들었다 해도 사회적 존재로 남고자 하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살아있기에. 엄마는 이 마음을 ‘죽는 날까지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엄마는 암이 뇌까지 전이된 상황에서도, 몸무게가 28kg까지 빠져서 거동이 어려울 때도, 안전한 요양시설에서 케어받으며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대신 위험천만하지만 ‘진짜 삶’으로 뛰어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기꺼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험을 감수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보통 암이나 치매 등에 걸린 어르신들은 집에서 돌봄 받거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 요양시설에서 지낸다. 이들은 집이든 요양시설이든 거의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관리하는 방식은 대부분 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최대한 수명을 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다 낙상 사고가 발생하거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실종될 수 있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밤에 잠이 안 와도 불을 켤 수가 없었고, 꽃과 잔디가 아름다운 정원이 통유리창 밖으로 펼쳐져 있어도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생활의 리듬을 방해할까 봐, 나가서 돌아다니다 넘어져서 다칠까 봐, 혹은 돌발 상황이 발생해 부상을 입을까 봐… 이유는 많았다. 이처럼 요양시설에서는 거의 모든 자유가 통제된다. 단시간의 외출이나 외박, 식사, 간단한 신체 활동 외에는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리던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없었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병들었을 뿐인데,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모든 자유 의지가 통제된다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있을까? 환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시도도 못 하게 하는 대신에, 그 간절한 마음에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해볼 수 있게 돕는다면 어떨까? 막무가내로 떼 쓰는 노인들에게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는 대신, 마음을 헤아려주고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돕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돌봄 자체도 그전보단 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에게 늘 “안 된다”고만 말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엄마의 선택을 먼저 막아 섰던 순간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태도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 엄마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들을 무조건 막기보다 어디까지 가능할지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여전히 불안했고,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은 분명 그전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나에게 ‘웰다잉’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aboutAUTHOR유미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