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8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제4화. 어떤 암 환자에게 목숨보다 중요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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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인 엄마는 밤 열두 시, 지내고 있던 요양원 창문을 넘어 당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탈출’이었다. 가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누가 탈출했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그게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엄마가 초췌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식탁에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어떡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 줄 알아? 아무리 1층이어도 그렇지 거기 꽤 높잖아. 그리고 한밤중에 모르는 차는 왜 얻어 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그 사람이 납치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죽어도 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나랑 오빠랑 이모들이랑 엄마 살리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그럼 어떡해. 내가 요양원에서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나 거기로 절대 안 돌아가.

눈을 감았다. 엄마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도 될까? 사실, 케어의 면에서 요양원은 최적의 장소였다.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엄마를 돌보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엄마가 뭔가 필요로 하거나 돌발행동을 하려 할 때 적절히 조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입맛이 없어 식사를 잘 못하는 엄마를 위해 특별히 비빔국수나 김밥을 해주기도 하고, 엄마가 유난히 기력이 없을 땐 요양보호사님이 집에서 전복죽을 끓여와 손수 먹여주기도 했다. 두서없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고, 엄마 침대 옆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살뜰한 케어와 따뜻한 마음씨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유미 간병일기 4화

하지만 그러한 케어와는 별개로, 엄마는 불만이 많았다.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 좋은 5월의 봄이었지만 엄마는 요양원 앞 마당에 나갈 수 없었다. 푸릇푸릇한 잔디와 봄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은 창문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엄마는 1인실에서 지냈지만 밤에는 무조건 방에 불을 꺼야 했으며, 아무리 답답해도 거실에 나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한 요구였다. 마당에 잠시 나가 산책하고, 밤에 잠이 안 오면 방에 불을 켜거나 거실 의자에 잠깐 앉아 있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요양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전에 이곳에서 어떤 어르신이 정원을 산책하다 넘어져 골절을 당해, 가족이 요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몇 년 동안 고생했다. 또한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모두 치매 어르신들이라 밤낮이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밤에는 모두가 소등하고 잠을 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요양원의 사정은 이해가 갔다. 공동생활에서 규칙은 필수적이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모시다 보면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적은 수의 요양보호사들이 많은 인원을 돌보려면 반드시 통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을 케어하는 건 힘든 일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식사, 용변 처리, 투약 관리 등을 제외한 요청에는 돌봄 제공자의 추가 노동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런 일이 많아질수록 운영은 어려워진다. 이곳에서는 지시에 묵묵히 따르고 따로 요구를 하지 않아야 착한 어르신이었다. 원하는 게 많은 엄마가 트러블 메이커 취급받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가족의 입장에서 참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엄마와 통화할 때 요양원 원장이 옆에서 “밤에 왜 불을 켜고 있냐”고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가 걷기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왜 자꾸 걸으려 하냐, 정신이 있냐 없냐”라고 화내는 걸 들었을 땐, 직접 전화해 따지고 싶은 걸 참기도 했다.

문득, 평생을 새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엄마에게 이런 요양원은 견딜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세 번의 암에 걸렸어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던 엄마는, 네 번째 암 발병 후 2평 남짓한 요양원 방에 갇혀 밖에도 못 나가고 고립되었다. 자유는커녕 생명마저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미 간병일기 4화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야생에서 살던 새가 크게 다쳐 평생 새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 새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곧 죽더라도 새장을 떠날까, 아니면 보호받으며 평생 갇혀 있을까? 그리고 엄마가 그 새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 하루를 살더라도 원하는 대로 훨훨 날아다니다가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지 않을까?

엄마가 말했다.

나 요양원에서 참으려고 노력 많이 했어. 근데 정말로 1분 1초도 더 못 있을 것 같았어. 자유가 하나도 없어. 거기 있으면 더 오래 살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싫어.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다시는 안 돌아갈 거야.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엄마는 그곳에서 단 1초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택에서 지내려면 상당한 간병비와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정신도 많이 돌아왔고. 요양 등급 받아서 집에 요양보호사 부르고 좀 도와달라고 하면 돼. 너랑 오빠도 나 돌보러 올 필요 없어. 필요할 때마다 근처에 사는 이모 잠깐 부르든지, 정 힘든 일 있으면 그때그때 너희한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 테니까, 평소에는 신경 쓰지 마.

그러다가 저번처럼 밤에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머리 깨지면 어떡할 건데?

말했잖아. 나 암 네 번 걸린 사람이야. 죽어도 할 수 없어. 그냥 집에서 지낼래. 나 있잖아…

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나… 바라는 거 많이 없어.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딱 하루를 살아도 일상을 살고 싶어. 남은 삶을 진짜 사는 것처럼 살다가 가고 싶어. 집에서 책 읽고, TV 보고, 뜨개질하고, 기운이 좀 있으면 행복센터 가서 강좌들 들으면서. 나 그렇게 살래.

유미 간병일기 4화

엄마의 얼굴은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눈빛을 보니 더 이상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자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밤 열두 시에 창문 넘어 도망친 그곳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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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제4화. 어떤 암 환자에게 목숨보다 중요했던 것은 암 환자인 엄마는 밤 열두 시, 지내고 있던 요양원 창문을 넘어 당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탈출’이었다. 가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누가 탈출했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그게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엄마가 초췌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식탁에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어떡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 줄 알아? 아무리 1층이어도 그렇지 거기 꽤 높잖아. 그리고 한밤중에 모르는 차는 왜 얻어 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그 사람이 납치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죽어도 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나랑 오빠랑 이모들이랑 엄마 살리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그럼 어떡해. 내가 요양원에서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나 거기로 절대 안 돌아가. 눈을 감았다. 엄마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도 될까? 사실, 케어의 면에서 요양원은 최적의 장소였다.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엄마를 돌보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엄마가 뭔가 필요로 하거나 돌발행동을 하려 할 때 적절히 조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입맛이 없어 식사를 잘 못하는 엄마를 위해 특별히 비빔국수나 김밥을 해주기도 하고, 엄마가 유난히 기력이 없을 땐 요양보호사님이 집에서 전복죽을 끓여와 손수 먹여주기도 했다. 두서없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고, 엄마 침대 옆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살뜰한 케어와 따뜻한 마음씨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하지만 그러한 케어와는 별개로, 엄마는 불만이 많았다.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 좋은 5월의 봄이었지만 엄마는 요양원 앞 마당에 나갈 수 없었다. 푸릇푸릇한 잔디와 봄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은 창문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엄마는 1인실에서 지냈지만 밤에는 무조건 방에 불을 꺼야 했으며, 아무리 답답해도 거실에 나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소박한 요구였다. 마당에 잠시 나가 산책하고, 밤에 잠이 안 오면 방에 불을 켜거나 거실 의자에 잠깐 앉아 있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요양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전에 이곳에서 어떤 어르신이 정원을 산책하다 넘어져 골절을 당해, 가족이 요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몇 년 동안 고생했다. 또한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모두 치매 어르신들이라 밤낮이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밤에는 모두가 소등하고 잠을 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요양원의 사정은 이해가 갔다. 공동생활에서 규칙은 필수적이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모시다 보면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적은 수의 요양보호사들이 많은 인원을 돌보려면 반드시 통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을 케어하는 건 힘든 일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식사, 용변 처리, 투약 관리 등을 제외한 요청에는 돌봄 제공자의 추가 노동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런 일이 많아질수록 운영은 어려워진다. 이곳에서는 지시에 묵묵히 따르고 따로 요구를 하지 않아야 착한 어르신이었다. 원하는 게 많은 엄마가 트러블 메이커 취급받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가족의 입장에서 참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엄마와 통화할 때 요양원 원장이 옆에서 “밤에 왜 불을 켜고 있냐”고 소리를 지르거나, 엄마가 걷기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왜 자꾸 걸으려 하냐, 정신이 있냐 없냐”라고 화내는 걸 들었을 땐, 직접 전화해 따지고 싶은 걸 참기도 했다. 문득, 평생을 새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엄마에게 이런 요양원은 견딜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세 번의 암에 걸렸어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던 엄마는, 네 번째 암 발병 후 2평 남짓한 요양원 방에 갇혀 밖에도 못 나가고 고립되었다. 자유는커녕 생명마저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야생에서 살던 새가 크게 다쳐 평생 새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 새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곧 죽더라도 새장을 떠날까, 아니면 보호받으며 평생 갇혀 있을까? 그리고 엄마가 그 새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 하루를 살더라도 원하는 대로 훨훨 날아다니다가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지 않을까? 엄마가 말했다. 나 요양원에서 참으려고 노력 많이 했어. 근데 정말로 1분 1초도 더 못 있을 것 같았어. 자유가 하나도 없어. 거기 있으면 더 오래 살 수는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싫어.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다시는 안 돌아갈 거야.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엄마는 그곳에서 단 1초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택에서 지내려면 상당한 간병비와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정신도 많이 돌아왔고. 요양 등급 받아서 집에 요양보호사 부르고 좀 도와달라고 하면 돼. 너랑 오빠도 나 돌보러 올 필요 없어. 필요할 때마다 근처에 사는 이모 잠깐 부르든지, 정 힘든 일 있으면 그때그때 너희한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 테니까, 평소에는 신경 쓰지 마. 그러다가 저번처럼 밤에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머리 깨지면 어떡할 건데? 말했잖아. 나 암 네 번 걸린 사람이야. 죽어도 할 수 없어. 그냥 집에서 지낼래. 나 있잖아… 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나… 바라는 거 많이 없어.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딱 하루를 살아도 일상을 살고 싶어. 남은 삶을 진짜 사는 것처럼 살다가 가고 싶어. 집에서 책 읽고, TV 보고, 뜨개질하고, 기운이 좀 있으면 행복센터 가서 강좌들 들으면서. 나 그렇게 살래. 엄마의 얼굴은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눈빛을 보니 더 이상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자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밤 열두 시에 창문 넘어 도망친 그곳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aboutAUTHOR유미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