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제3화. 60대 암 환자, 요양원 창문을 넘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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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네 번째 암은 뇌에서 발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을 수술로 잘 제거했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의 섬망 증상은 여전했다. 밤이면 밖으로 나가 배회하려 했고, 24시간 중 23시간을 깨어 있었으며 말을 끊임없이 했다. 오빠와 나, 간병인이 번갈아가며 엄마를 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밤새 휘청거리며 끊임없이 돌아다니려는 사람을 무슨 수로 돌볼까? 결국 엄마는 한밤중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가 찢어진 채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찢어진 부위가 수술 부위를 살짝 비껴 나 열두 바늘을 꿰매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제는 엄마를 외부 시설로 모시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 요양병원이냐, 요양원이냐.

우리는 엄마를 소규모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개인실과 거실과 부엌이 일반 가정처럼 갖춰진 곳이었다. 마침 5월이라, 앞마당에 넓게 깔린 잔디밭 곳곳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곳이라면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겠지?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에 그곳이 요양원인지 일반 가정집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하루이틀은 기분 좋게 지낸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안 되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유미 간병일기 3화

나 집에 가고 싶어. 이제 갈래. 나 데리러 와.

엄마, 왜 그래. 밥도 잘 나오고 대화 나눌 사람도 있고 좋잖아.

그렇긴 한데, 밤에 잠이 안 와서 거실에 나가면 방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러. 나 아주 깜짝 놀랐잖아.

위험할까 봐 그랬겠지. 엄마, 며칠만 더 있어봐. 거기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서 체력 돌아오면 나오자. 응?

… 알았어.

엄마는 적응해 보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엄마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전화해 빨리 데리러 오라고 했고, 나중에는 화를 내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요양보호사님들이 몰래 휴대폰을 감췄지만, 엄마는 감춘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나도 엄마를 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상태는 치매와 매우 흡사했다. 처음엔 일시적인 섬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술 후 한 달이 넘게 엄마는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밤을 아침으로 착각하기도, 현재 당신이 영국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양원 원장님이 말했다.

유미 간병일기 3화

엄마는 치매예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 모두가 편해져요. 이제 예전의 엄마는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에게 맡기고, 따님은 아기나 잘 돌봐요. 자기 가정 챙겨야지, 결혼도 했는데.

원장님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예전에 어렸을 땐, 나중에 엄마가 늙어서 아프거나 치매에 걸리면 당연히 내가 돌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이좋은 모녀였으니까. 내가 좋은 상황은 엄마도 좋고, 엄마에게 좋은 상황은 나도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이런 상태가 되니 관계가 조금 묘해졌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러니까 익숙하고 편안한 당신 집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지내려면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내가 내 삶을 챙기고 온전한 일상을 살려면 엄마가 시설에서 지내야만 했다. 마치 엄마와 시소에 탄 것 같았다. 서로 상대방을 만족시키려면, 그 자신은 무언가를 크게 포기해야 했다.

나는 엄마가 딱했다. 암에 네 번이나 걸리고,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몸무게가 28kg까지 빠질 만큼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겨우 살아났는데, 요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아기와 남편을 포기하고 엄마에게만 올인할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점점 죄책감은 커지고 자기혐오는 극에 달했다. 엄마가 새벽에 전화해 빨리 꺼내달라고 소리칠 때면,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이전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 좋은 아침이야.

아, 엄마… 지금 밤이야.

밤이구나. 자다 깨서 아침인 줄 알았어. 있잖아, 나 내보내 줘. 여기 너무 답답해. 산책하러 나가자고 해도 한 번을 못 나가게 해. 그냥 집안에만 있으래. 그리고 밤에 잠 안 와서 불 켜놓고 라디오 들으려고 하면, 불 끄라고 소리 질러. 여기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자유가 하나도 없다고. 이러느니 그냥 죽는 게 낫겠어.

엄마, 알겠어. 조금만 참아봐. 우리 집 근처로 엄마 집 얻으려고 하거든? 조금만 기다려줘.

몰라, 이제 진짜 못 참아. 너 오늘 안 오면 나 창문에서 뛰어내릴 거야. 오늘 꼭 데리러 와. 알았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양원에서 엄마가 지낸 방은 1층이었다. 1층이라고 해도 쉽게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는 아니었다. 기력도 없는 엄마가 설마 진짜로 그렇게 하겠어? 이미 밤이 늦었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에게 가기로 마음먹고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모였다.

유미 간병일기 3화

너희 엄마 요양원에서 탈출했다. 지금 외할머니 집에 와 있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탈출했구나. 밤 열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창문에서는 어떻게 뛰어내렸으며, 그 새벽에 그 외진 곳에서, 12킬로미터를 어떻게 이동해서 할머니 댁에 갔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모한테 연락을 받은 순간, 몹시 화가 났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자유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내가 묶어뒀구나. 단 하루를 살아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엄마의 안전과 우리의 편의 때문에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구나. 이제 엄마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내 탓은 아니었다. 오롯이 엄마의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나는 앞으로 엄마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든, 그저 엄마의 선택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내가 했던 행동은 엄마의 인생에 대한 월권이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엄마는 모두가 잠든 밤 방 창문에서 뛰어내려 근처에 정차해 있던 검은 차량(엄마는 근처 폐쇄병동과 요양병원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태워다 주고 모종의 대가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고 짐작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의 문을 두드려, 양말 속에 감춰뒀던 10만 원을 주며 읍내로 태워 달라고 말했고,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엄마를 할머니 댁 앞까지 태워줬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

abou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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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미

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엄마의 네 번째 암은 뇌에서 발생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을 수술로 잘 제거했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의 섬망 증상은 여전했다. 밤이면 밖으로 나가 배회하려 했고, 24시간 중 23시간을 깨어 있었으며 말을 끊임없이 했다. 오빠와 나, 간병인이 번갈아가며 엄마를 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밤새 휘청거리며 끊임없이 돌아다니려는 사람을 무슨 수로 돌볼까? 결국 엄마는 한밤중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가 찢어진 채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찢어진 부위가 수술 부위를 살짝 비껴 나 열두 바늘을 꿰매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제는 엄마를 외부 시설로 모시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 요양병원이냐, 요양원이냐. 우리는 엄마를 소규모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개인실과 거실과 부엌이 일반 가정처럼 갖춰진 곳이었다. 마침 5월이라, 앞마당에 넓게 깔린 잔디밭 곳곳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곳이라면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겠지?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기 때문에 그곳이 요양원인지 일반 가정집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하루이틀은 기분 좋게 지낸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안 되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이제 갈래. 나 데리러 와. 엄마, 왜 그래. 밥도 잘 나오고 대화 나눌 사람도 있고 좋잖아. 그렇긴 한데, 밤에 잠이 안 와서 거실에 나가면 방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러. 나 아주 깜짝 놀랐잖아. 위험할까 봐 그랬겠지. 엄마, 며칠만 더 있어봐. 거기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서 체력 돌아오면 나오자. 응? … 알았어. 엄마는 적응해 보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엄마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전화해 빨리 데리러 오라고 했고, 나중에는 화를 내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요양보호사님들이 몰래 휴대폰을 감췄지만, 엄마는 감춘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나도 엄마를 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상태는 치매와 매우 흡사했다. 처음엔 일시적인 섬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술 후 한 달이 넘게 엄마는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밤을 아침으로 착각하기도, 현재 당신이 영국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양원 원장님이 말했다. 엄마는 치매예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 모두가 편해져요. 이제 예전의 엄마는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에게 맡기고, 따님은 아기나 잘 돌봐요. 자기 가정 챙겨야지, 결혼도 했는데. 원장님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예전에 어렸을 땐, 나중에 엄마가 늙어서 아프거나 치매에 걸리면 당연히 내가 돌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이좋은 모녀였으니까. 내가 좋은 상황은 엄마도 좋고, 엄마에게 좋은 상황은 나도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이런 상태가 되니 관계가 조금 묘해졌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러니까 익숙하고 편안한 당신 집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지내려면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내가 내 삶을 챙기고 온전한 일상을 살려면 엄마가 시설에서 지내야만 했다. 마치 엄마와 시소에 탄 것 같았다. 서로 상대방을 만족시키려면, 그 자신은 무언가를 크게 포기해야 했다. 나는 엄마가 딱했다. 암에 네 번이나 걸리고,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몸무게가 28kg까지 빠질 만큼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겨우 살아났는데, 요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아기와 남편을 포기하고 엄마에게만 올인할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점점 죄책감은 커지고 자기혐오는 극에 달했다. 엄마가 새벽에 전화해 빨리 꺼내달라고 소리칠 때면,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이전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 좋은 아침이야. 아, 엄마… 지금 밤이야. 밤이구나. 자다 깨서 아침인 줄 알았어. 있잖아, 나 내보내 줘. 여기 너무 답답해. 산책하러 나가자고 해도 한 번을 못 나가게 해. 그냥 집안에만 있으래. 그리고 밤에 잠 안 와서 불 켜놓고 라디오 들으려고 하면, 불 끄라고 소리 질러. 여기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자유가 하나도 없다고. 이러느니 그냥 죽는 게 낫겠어. 엄마, 알겠어. 조금만 참아봐. 우리 집 근처로 엄마 집 얻으려고 하거든? 조금만 기다려줘. 몰라, 이제 진짜 못 참아. 너 오늘 안 오면 나 창문에서 뛰어내릴 거야. 오늘 꼭 데리러 와. 알았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양원에서 엄마가 지낸 방은 1층이었다. 1층이라고 해도 쉽게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는 아니었다. 기력도 없는 엄마가 설마 진짜로 그렇게 하겠어? 이미 밤이 늦었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에게 가기로 마음먹고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모였다. 너희 엄마 요양원에서 탈출했다. 지금 외할머니 집에 와 있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탈출했구나. 밤 열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창문에서는 어떻게 뛰어내렸으며, 그 새벽에 그 외진 곳에서, 12킬로미터를 어떻게 이동해서 할머니 댁에 갔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모한테 연락을 받은 순간, 몹시 화가 났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자유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내가 묶어뒀구나. 단 하루를 살아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엄마의 안전과 우리의 편의 때문에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구나. 이제 엄마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내 탓은 아니었다. 오롯이 엄마의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나는 앞으로 엄마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든, 그저 엄마의 선택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내가 했던 행동은 엄마의 인생에 대한 월권이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엄마는 모두가 잠든 밤 방 창문에서 뛰어내려 근처에 정차해 있던 검은 차량(엄마는 근처 폐쇄병동과 요양병원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을 태워다 주고 모종의 대가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고 짐작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의 문을 두드려, 양말 속에 감춰뒀던 10만 원을 주며 읍내로 태워 달라고 말했고,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엄마를 할머니 댁 앞까지 태워줬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 aboutAUTHOR유 미프리랜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작가 겸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현재 유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를 집필했다.※ 이 칼럼의 내용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교보생명 뉴스룸의 공식 입장이나 방향성과는 무관합니다. 유미 작가의 간병 일기 우리들의 시간 시리즈